분주한 주말.. 평소 아는 사람과 뜻밖에 사돈이 되고...
분주한 주말.. 평소 아는 사람과 뜻밖에 사돈이 되고... 조손祖孫이 만나도록 하고.. 된장가르고.. 백일홍 심고.. 화분 분갈이하고.. |
지난주말 이틀동안(05.11~12)의 분주한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당일치기로 고향에서 조손이 만나도록 하고. 화단의 풀을 메고. 아욱씨와 깨씨 사고. 예식장에서 갑자기 아는사람과 사돈이 되고. 된장을 갈라 된장과 장을 저장하고. 화분 10여개를 분갈이하고. 백일홍과 과꽃을 심고. 옥수수 모종을 파종하고. 순두부, 떡볶이, 돈까스로 저녁을 먹고. 이런 나의 모습이.. 그냥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강변하며...
바쁜주말
토요일엔 애 엄마는 직장동료들과 선진지견학을 다녀오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고향의 어머니께 다녀 왔다.
일요일엔 오전에 아욱씨와 참깨씨를 사온 후 화단 제초작업을 하고, 낮에 예식장에 다녀 오고, 오후에는 장을 갈라 다리고 된장을 갈무리하는 것을 돕고 백일홍과 과꽃 씨를 뿌리고 화분 12개의 분갈이를 하였다.
토요일(2013.05.11) 아침. 여섯살 아이와 먼길을 나섰다.
고향의 어머니께 애와 둘이 당일치기로 다녀 왔다. 제 엄마는 07시에 출발하는 선진지견학에 맞춰 벌써 나가고 없는데 잠이 깨어 엄마를 찾기에 엄마 갔다고 했더니 다른날과 달리 쉽게 내 등에 업힌다. 오늘 할머니댁에 다녀오자, 엄마 돌아올 시간에 맞춰 돌아오자고 했더니 어제까지 엄마랑 함께 아니면 싫다던 애가 선선히 그러자고 한다.
아침을 먹고 가자고 했더니 배 고프지 않다고 그냥가겠다 하여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나선다. 뒷좌석 안전시트에 앉아서 재잘대는 아이와 한 시간 가까이 달려 터미날 환승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 들었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차를 직접 운전하고 다녀오기엔 너무 먼 거리이고 KTX 같은 빠르고 편한 교통기관은 애가 계속 안 가겠다고 하여 마련을 못하였고, 이럴 땐 고속버스 밖에 없는데 토요일이라 행여 빈자리 있을까 출발차 앞에 기다려 봤으나 만석으로 떠난다.
아이와 터미널 안의 식당에 들었다.
아침이지만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인 국수를 시켰는데 포크로 제법 먹는다. 다음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 내리고 나서 개점 준비중인 대형마트 앞에 놓인 놀이기구를 탄다. 긴장한 표정으로 핸들을 잡고 좌로 우로 돌리는 모습이 제법이다. 개점한 마트에 들어가 차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고향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애에게 가지고 온 책 두 권을 몇 차례 읽어 주었는데, 챙겨온 인형을 안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안스럽다. 동네에 아이들도 없는데다 형제마저 없으니 아이는 아빠 엄마가 놀이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TV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혼자 논다. 컴퓨터가 있지만 일부러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았고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등은 일부러 준비하지 않아 혼자 노는데 습관이 들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인형을 안고 혼자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뽑기로 자라는 선인장과 보석상자를 뽑았다. 아이는 계속 보석상자에 선인장을 넣어두고 인형에게 혼잣말을 하면서 논다. 혼잣말로 소꿉놀이를 하는 것이다.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인근에 또래 아이가 없으니 방법이 없다.
고향의 고속버스터미널 앞 택시 타는 곳이 장사진이다. 줄을 서서 기다려 보았으나 바쁜데 시내버스보다 늦겠기에 아이와 시내버스에 올랐다. 어머님은 연락을 받으시고 동네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계신다.
아이가 먼발치에서 할머니를 발견하고 외쳐 부르며 달려가 안기고 손을 맞잡고 고향집에 들어섰다.
아이가 방에 들더니 할머니에게 방석을 권하고 저도 방석을 가져와 올라서더니 두 손을 머리에 얹고 극진하게 절을 한다. 어머니는 그 모습이 대견하여 이젠 제법 커서 앉히기에 부담스러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와 이야기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마당 한 쪽의 감나무, 시든 꽃잎만 달고 있는 철쭉, 수확할 때가 다가오는 마늘 밭, 화분에 심어져 있는 여러 꽃들, 그 꽃에 앉아 있는 벌레들이 모두가 할머니와 아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화제거리다. 대도시의 가운데지만 터가 있고 거기에 채소와 꽃과 나무들을 가꾸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당일치기를 하려니 오래 있질 못한다.
할머니와 아이, 아직 이야기가 한창인데 재촉하여 출발한다. 택시로 고속터미널 까지, 택시 기사는 토요일이라서 길이 막힐지 모른다면서 예사로 신호위반을 하며 달려 예매하여 두었던 차 시간에 늦지 않게 차를 타고 출발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많아 함께 노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면 어려웠겠지만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안에서 간혹 내게 놀아 달라고 하면서도 잘 논다. 여전히 혼자 놀던 아이는 한 30분 가량 잠에 들었다. 휴게소에서 잠을 깨웠더니 소변을 본다고 화장실에 들었는데 안에서 아이가 운다. 웬일인가 했더니 손잡이가 고장이나 있어서 안에서 혼자 열지 못해서였다. 어른이 아니면 손이 닿지 않은 높이에 임시 손잡이를 달아 놓았으니 나올 수 없어서 울었던 것이다.
출발하였던 고속터미널에 돌아오니 또 뽑기를 하자는데 없다.
여긴 없으니 다음에 꼭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집으로 간다. 간혹 제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태안, 지금 예산 휴게소, 지금 청원 옆의 식당. 저녁 먹고 갈거예요. 집에서 15분 거리의 본죽에서 호박죽과 쇠고기버섯죽을 가지고 집에 도착하자 나도 피곤하다.
사온 죽으로 저녁밥을 먹고 씻고 나니 졸음이 몰려 온다.
그런데 아이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내게 소꿉놀이를 하자고 했다가 나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혼자 TV를 본다. 20시 반까지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있었는데 엄마가 왔다고 외치는 아이의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애 엄마도 새벽부터 직장 동료들과 선진지견학이라고 나섰지만 가고 오는 관광버스에서 떠들썩하게 놀아 피곤하다면서도 아이를 간수하고, 난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일요일(05.12) 새벽.
일찍 일어나 화단 제초작업을 한다. 꽃잔디가 예쁘게 자랐는데 사이에 끼어있는 잡초를 뽑고, 지난해 어머니가 잡초인줄 알고 꺾어버린 백합이 죽은지 알았더니 싹이 올라 살피고, 아이가 잠이 깨어 일어나더니 산책을 가자고 한다.
애의 자전거를 꺼내고, 내 자전거도 꺼내고, 아이는 앞에 나는 뒤에 이른 아침의 산책모습이다. 요즘 한창인 애기똥풀이 노란초장을 이룬 모습을 보면서 이웃마을에 접어 들었는데 아빠 앵두 따던 집이 어디야? 응 저 집이야. 그때 보리수 열매도 땄지? 생각 안나? 지난해 아침에 산책하면서 거의 매일 종이컵으로 하나씩 앵두, 보리수 열매, 뽕나무 오디 등을 따 먹었는데 그 생각이 난 모야이다.
벌써 나뭇가지에 벌레들이 깃들었다. 야쿠르트 빈병을 주워 벌레를 잡아 담아 자전거의 앞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가던 아이가 "자연에서 살게 살려주자"하면서 벌레들을 풀가에 쏟아 낸다.
아침먹고 나서 난 텃밭에 뿌릴 아욱씨를 사러 나섰다.
농약사 세 곳을 거쳐서야 아욱씨와 참깨씨를 샀다. 참깨씨는 1,000알은 5천원, 3천알(50평 분량)은 12,000원이라기에 3천알 짜리로 샀다. 아욱은 텃밭에 뿌리고 깨는 05월 말이나 06월 초에 밭에 뿌릴 생각이다.
돌아오니 농삿일은 문외한인 난 할 수 없고, 애 엄마가 아욱씨를 뿌렸다. 이어서 지난 봄에 메주를 옹기에 넣어 소금물에 담가놓은 장독에서 메주를 건져내어 짓이겨 된장과 장을 가를 준비를 한다. 메주를 건져낸 장독의 장국을 콘솥에 담아 끓일 준비를 한다. 연탄 화덕을 내다가 불 살릴 준비를 하고, 이렇게 오전이 갔다.
가까운 친척의 아들 결혼식 시간이 14시 이다.
12시반 쯤 세 식구가 예식장으로 출발하였다. 아이는 오늘은 아빠차가 아니고 엄마차네~ 하면서 제 엄마와 제잘 거린다. 노래 한구절, 생각이 안 났다가 자꾸 생각했더니 떠오른
"♪ ♬ ~ 먹고나면 대굴대굴 안방에 누워
양친부모 속썩이던 등신같은 무용인간
옥황상제 문전에서 알거지가 되었다네
바우와우와우 파라라라디디 바우와우와우~ ♬ ♪"
를 불러 주니 가사의 뜻을 알겠는지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예식장에 도착
부산히 인사들을 나누고 점심을 부페에서하고, 예식장에 들었는데, 나는 오늘 분명 신랑의 하객인데 잘 못 신부의 하객석에 앉은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엇! 뜻밖에도 신부의 아버지가. 내가 활동하는 어떤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는 회원이지 않는가?!! 아니, 오늘 딸 결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예식이 겹쳤다고 생각했더니 뜻밖에 예식장에서 만났다.
신부의 아버지와 악수를 나누면서 세상 참 이런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사돈이 되고 말았다. 신랑이 조카이니 신부는 조카며느리이고 그 조카며느리의 친정아버지이면 사돈인데 나랑 같은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아는 사람이었으니 뜻밖이고 묘한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식장을 끝까지 지킬 수 없다.
인사값(신혼여행 여비) 까지 봉투로 만들어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 뒀지만 그렇게 기다릴 여유가 없다.
연탄불에 닳여 놓은 장이 다 닳을까 걱정되는데다 한 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이고 장독을 마련하여가지고 가야한다. 신랑 신부 양측 모두와 인사는 생략하고 출발하였다.
옹기전에 들어 옹기 두 개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 왔다.
난 이 때부터 화분 분갈이 준비를 한다. 간혹 메주를 짓눌러 부수어 옹기에 담는 일을 도와주고, 다려진 장을 옹기에 담는 것도 도와 주고, 그러면서 마사토에 퇴비를 섞어 화분을 만들고, 또 난 못한다고 애 엄마에게 백일홍과 과곷 씨를 뿌리도록 하고, 큰 화분하나에는 옥수수 목종을 한다고 씨옥수수를 뿌려 흙을 덮고,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밥을 지어 먹기에는 시간이 늦었다.
식당까지는 차로 10여분 거리, 칼국수를 먹자고 나섰는데 그 식당이 문을 닫았다. 그렇다면 다른 식당들도 영업이 끝났을 것이다. 에라~ 김밥집으로 가자. 나는 순두부 백반. 애 엄마는 떡볶이, 애는 돈까쓰,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이 것이 이틀동안의 분주한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이런 것이 글로 쓸만한 것이 될까? 안 된다 하더라도 후일 읽으면서 추억이 될 것 같아 한 시간여를 앉아서 글로 하다보니 제법 양이 많은 글이 되었다.
그냥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사는 모습이라고 강변하며 글을 마친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