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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koreanuri@hanmail.net 2012. 6. 25. 14:47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아 -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날을
맨주먹 붉은피로 적군을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쫒기는 적의 무리 쫒고 쫒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 이겨레"

6.25사변이라고 하다가 국적불명의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인공난리'라 하거나 '김일성의 난'이라 하여야 마땅할 6.25가 되었습니다.

전후세대인 저로서는 6.25의 참상을 국민학교 때부터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과 책(교과서 등)을 통해 기억할 뿐입니다.

제 아버님은 6.25사변이나 6.25 동란이란 말을 모르십니다. 그냥 '인공난' 혹은 '인공때', 간혹은 '인공난리'라고 하실 뿐이었습니다.

이 난리 때 제 아버님은 시신을 단 한번도 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1918년 생이시니 인공난 당시 33세 이셨을 것으로 짐작 되는데 그냥 집에 계셨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합니다.

친척 가운데 사촌형님 한 분이 국군 운전병이셨는데 난리후 돌아 오시지 않아 아직도 행불자로 되어 있으십니다.

그리고 큰이모부가 빨치산으로 위장한 토벌대(국군? 경찰?)가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부른 후 김일성 만세를 부르라 하여 불렀더니 '이놈들 모두 빨갱이들이구만"하면서 총을 쏘아 마을 젊은이들이 몰살될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당시 어떤 젊은이가 아기를 업고 부름을 받고 모였다가 총을 쏘고 돌아가는데 업고 있던 아기가 울자 '아기도 죽지 않았는데, 더 쏘자'면서 총을 더 쏘아 살아난 사람이 겨우 3명이었다고 합니다.

큰이모는 홀몸으로 아들하나에 딸 셋을 길러 내셨는데 어린 저희들은 이런 얘기가 동화속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어머님은 인공때 어느 토굴에서 야학으로 "가갸 거겨~" 한글을 배우셨다고 하니 우리 민족이 동족상잔의 전쟁 틈바구니에서도 자식 공부시키는 것 만큼은 그치지 않았던 것이지요.

혹자는 트루만을 칭찬하면서 맥아더 보다 훌륭한 우리민족의 은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애치슨 라인’ 공표(1949.1.12.) 등의 실책과 후일 맥아더 및 이승만의 통일의지를 꺾은 것을 볼 때 오히려 인공난을 일어나게 만들고 우리나라를 분단국에 머무르게 만든 1등 공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도 봅니다.

해방공간

1945년 왜 패망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까지 3년을 해방공간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말도 해방이라는 말이 일종의 무정부 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느낌이 좋지 않은데 여러곳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어느 신문사에서 '해방공간 이야기'라는 글을 공모하여 시상하였을 때 제 아는 분이 대상을 받아 만주와 백두산 등 일대를 여행하고 오신 일도 있습니다.

인공난, 인공난리.

힘이 약한 민족, 나라가 겪는 슬픔 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민족, 우리 나라는 그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

그렇습니다. 분명히 북괴는 우리의 적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북괴가 아닌 북한은, 특히 북한의 백성은? 그들이 한 때 우리와 총뿌리를 겨누었으니,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야 할 적일까요?

간혹 북한과 북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인사들이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북한의 불쌍한 우리 동포들.

굶어 죽어가는 동포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다시는 이런 전쟁을 하지말자가 아니라 어서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1세기가 되었고,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엄청나게 발전하였고, 그러면 뭐 합니까?

끝나지 않은 전쟁을 어찌하지 못하는데 발전하였다고 해 봐야 그저 가슴앓이 뿐이지 않겠습니까?

어서 인공난리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