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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2004년 호적제 폐지 논의가 한창이던 때 올린 글입니다.
당시 폐지론자들은 우리나라의 호적이 왜정(倭政)떄 왜인들이 처음 호적제를 도입하였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에 제가 이태조의 호적이 등 이미 오랜 호적이 있는데 이 무슨 말이냐고 반론을 펴면서 올렸던 것입니다.
8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진의 링크가 깨져 다시 올렸습니다.
호적제 폐지는 지금 한창 실시하고 있는 '도로명 주소' 처럼 아쉬움이 많고 괜한일을 하는 것으로 보여 퍽 아쉽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호적제나 주소체계나 지켜나가야할 전통인데 말입니다.
이태조.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징기스칸의 셋째아들 '옷치킨'가(家)의 군벌이었습니다.
고려말에 이르러 신흥군벌로 등장하고 결국 역성혁명을 하였지만 사실은 치죄 청산하여야할 친몽파인 것입니다. 오늘날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듯이 고려말에도 공민왕이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기득권 세력 때문에 친몽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태조가 몽골이름이 있었다는 학자들이 다수 있는데 지금 그 의론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도 친몽파인 이성계 몽골 이름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우리역사
위의 댓글에서 "디지털 한국학"에서 한사군 때 부터라고 하지만 실제는 환국 때 부터라고 한 것은 나름 근거가 있지만 윗글에서도 밝히지 않았지만 너무 장황하여 후일 따로 거론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에서도 생략 합니다.
때 아닌 이야기 인데 옛 글을 정리하다 여기에 올립니다. 아래 호적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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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주 (2004/09/08 (수) 19:20:23) ![]() ⇒ 우리나라의 호적은 호적부가 남아있는데 역사 기록으로 보더라도 삼국시대부터 시작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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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주 (2004/09/08 (수) 19:50:12) ![]() ⇒ 위의 "디지털 한국학"에서 설명하는 내용에 한사군때(고구려 성립이전. 고조선과 삼국시대 사이)부터 호적이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이전 환국때 부터 호적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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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2004/09/08 (수) 21:48:39) ![]() ⇒ 저는 호적이 아니라 호주제를 말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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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주 (2004/09/09 (목) 02:49:17) ![]() ⇒ 정훈님. 호적은 호주가 있어야 만들어 집니다. 위 이성계 호적의 호주도 이성계라고 설명되어 있지요? 잘 읽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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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 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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