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고치는 고스톱 -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바로 안다.
해석이 여러가지 이지만 난 이 해석을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또 좋아합니다.
옛것이라면 얼마전 것일까요?
어제면 벌써 옛일 수 있고, 1년 전이라 하더라도 아직 옛이 아닐 수 있으니 그 한계를 정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지금 1980년대 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옛일 수 있고, 그러나 아직 반백년도 안 지났으니 옛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러나 온고지신(溫故知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1980년대 초에 법원에서 61억 3백만원에 백화점 건물을 경락 받았습니다.
이 백화점을 명도 받아 그랜드 오픈을 할 때까지 밤잠을 자지 못하고 겪었던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두어가지를 얘기 하는 것이야.
백화점 직원 1천여명이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였는데 부속실 직원 몇명과 임원들을 빼고는 한 사람도 출근하지 않았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랴 부랴 '내부 수리중'이라는 안내장을 여기 저기에 붙여 놓고 상황파악을 하는데 '따르릉~' 전화가 울렸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휴대전화가 없던 때였고, 전화벨 소리도 따르릉 하고 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받았더니 OO서 정O과 직원이었습니다.
"오늘 직원들 왜 출근하지 않았는지 알아요?"
"지금 직원들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정O과 직원이 주는 정보가 있었고, 대처방법에 대한 안내도 있었고, 이런 말들을 듣고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직원들 몇몇이 나의 방으로 들어 옵니다. 기웃 기웃 망서려 가며 7~8명이 들어 서기에 자리를 권하였습니다. 소위 요구사항을 정리한 서면을 내밀면서 지금 사업부 별로 여러 곳에 분산하여 모여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로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대부분인 그들의 서면을 보면서 참으로 한심하였습니다.
이런 파업의 첫 번째 주제는 돈 아니겠습니까?
봉급을 올려 달라거나, 부식비나 야근 수당을 올려 달라거나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내용이 사실은 회사 즉 나하고는 관계가 없고 임직원간의 융화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난 아예 요구를 무조건 100% 들어 주겠다고 각서를 써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요즘 같으면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되었겠지만 당시로선 그러지 못하고 유선이나 인편으로 연락을 취하여 직원들이 복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이이기는 지금부터 입니다.
난 직원 대표라는 그들을 일부러 붙들고 앉아서 여러거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얼마후 정복 경관들 몇 사람이 들이 닥쳤습니다.
"당신들을 불법파업 현행범으로 체포 합니다."
그들은 닭장차라 불리는 범인연행용 차에 분산되어 실려 OO서로 연해 되어 갔습니다.
OO서에서 소위 조서라는 것을 받으며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난 잘 모릅니다. 다만, 불법파업을 저질렀으니 그에 응당한 법규에 의한 처벌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주지하였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백화점은 정상화 되었지만 난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OO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와서 합의서에 서명하여 주고 직원대표들을 데려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입니다. OO서에 가서 그들을 만나고, 다시 그들의 주장이 마땅치 않다는 인정을 받고,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와 합의서를 내고 그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까지 일사천리였습니다.
그러고는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2차 3차를 갔습니다.
그들로서는 형사처벌을 면하여서 다행이고, 난 백화점의 분란을 잘 해결하여 가슴을 쓸어 내리고...
이후 그들과 나와의 사이는 돈독하여 졌고 직원인사관리가 한결 편하여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그렇습니다. 연행도, 조서도, 탄원서도, 합의서도, 모두 각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어쩔줄 몰랐는데 천여명 직원들의 파업을 힘들이지 않고 무사히풀어낸 것이 지혜일까요?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을 바로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모든 일은 연륜과 경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연륜은 나이가 많아지며 얻은 경험에 의해 지어진 멋입니다.
경륜은 온고지신으로 닦아서 나이가 젊더라도 지닌 멋입니다.
연륜과 경륜이 쌓여 멋이 지어지는 것은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행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임신년이 가고 계사년이오고, 온고지신으로 새해를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