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손권.. 국서에 고구려 동천왕을 흉노황제 선우單于라고... |
우리민족과 흉노와의 친연관계에 대하여...
우리가 흉노인가? 우리가 흉노의 후예인가?
기원전후 1천년 동안 동서양을 주름잡은 흉노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가?
지구상에 역사상 존재했던 동이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다른민족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흉노가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다면 그들도 배달겨레이고 동이족이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동이인 우리 대한의 배달겨레는 흩어지고 사라져가는 동이를 다시 세워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온세계를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흉노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아 막으려고 하였던 북방의 흉악한 오랑캐라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 흉노가 고구려이고 신라이고 그러니 우리민족이라고 하면 믿어지는가?
말타고 약탈하고 살생하는 것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우리 배달겨레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생각 되지 않는가?
고구려의 동천왕을 지나(CHINA,支那) 삼국시대 손권이 국서國書에 선우單于라고 하였다.
선우單于는 북방의 강자 흉노의 수장 즉 흉노의 황제를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삼국시대 오나라의 황제 손권孫權은 고구려를 흉노로 인식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도 국서를 주고 받을 때 상대국의 국가명과 대통령이나 수상 혹은 왕의 호칭을 명확히 하듯이 AD 3세기(서기 234년)의 국서에 상대국 수장의 호칭을 선우라고 한 것은 상대국을 흉노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흉노, 동양사에서 뿐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흉노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 흉노가 우리 배달겨레의 역사에도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1. 먼저 고구려의 동천왕을 지나(CHINA,支那) 삼국시대의 손권孫權이 국서에 선우라고 기록한다.
2.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의 비석에도 흉노인 화관지후火官之后 김일제를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3. 세번째로 게르만족의 이동을 유발하여 로마를 멸망시킨 훈제국이 신라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살펴본다.
1. 고구려 동천왕을 손권이 선우라고 한 내용.
고려대 이종호 박사의 '한국 7대 불가사의' '고구려의 개마무사'편을 보면 고구려가 개마무사라 불리는 강력한 기마군단을 거느린 나라였던 것이 불가사의 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고구려 동천왕을 선우라고 한 기록이 실려있다. 고구려 동천왕은 지나(China 支那) 삼국시대에 요동을 위나라와 다투었는데 오나라의 손권이 보낸 국서에 동천왕을 선우라고 호칭하였다는 것이다.
< 이종호 지음 '한국 7대 불가사의' '고구려의 개마무사'편에 실린 동천왕과 손권의 관계 >
삼국지 오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 "견사자사굉(遣使者謝宏) 중서진순(中書陳恂) 배궁위선우(拜宮爲單于) 가사의복진보(加賜衣服珍寶)"
(손권은 사자인 사굉과 중서인 진순 등을 재차 고구려에 파견하여 동천왕을 선우로 책봉하고 의복과 진귀한 보물을 보냈다. 그들은 안평구로 들어 왔고 여기서 말 등을 싣고 돌아갔다.)
여기서 책봉이란 정식 수교(修交)의 관례적인 형식일뿐, 주종의 상하관계는 아니다.
( 이종호 지음 '한국 7대 불가사의' '고구려의 개마무사'편 170쪽에 발췌 인용 )
동천왕은 이후 손권과의 동맹을 거절하고 위나라와 함께 요동의 공손씨를 토벌하였으나 위나라가 땅을 할양하지 않자 요동을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이에 위나라에서 관구검을 보내 국내성을 함락하자 옥저 까지 도망을 간다. 이 때 위나라 군에 포위되어 목숨이 위태로운 동천왕을 구한 두 사람의 충신에 대한 이야기는 다름으로 미룬다.
군을 정비하여 관구검을 물리친 동천왕은 양위하고 자살한다. 위 동천왕 사진의 동천왕 벽비(동천왕 양위교서 벽비 東川王 讓位敎書 壁碑)가 진위논란이 있으나 양위문서이다. 당시 고구려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적에게 수도를 함락당하였다하여 왕이 양위까지는 몰라도 자살을 하였고, 당시 수많은 장군과 신하들이 만류에 불구하고 함께 자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이 고구려 1천년 역사의 뼈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 신라 문무왕의 비석에 흉노인 화관지후火官之后 김일제를 조상으로 기록한 내용.
문무왕이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이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이룩한 왕이다. 그의 비석에 흉노의 왕자 김일제를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신라 김씨의 위상을 높이려고 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다수는 신라 왕족 김씨가 흉노의 후예임을 인정한 기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설령 위상을 높이려고 했다 하더라도 신라인의 흉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고 또 우리민족이 흉노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기록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 신라문무대왕릉비(7세기 후반)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하였다.
이 비문을 두고 투후는 김일제를 말하며 이 김일제의 7대손이 신라로 와서 신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해석하면서 신라김씨 흉노유래설이 시작된다. 이 비문만을 놓고 볼 때는 그러한 해석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는데 신라문무대왕릉비보다 200여년 뒤에 당나라에서 만들어진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서 동일한 내용이 발견됨으로써 그러한 의문이 사라졌다. ( * 火官之后 화관지후 秺侯 투후. 이글 끝의 설명참고 )
☀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 9세기)
"먼 조상 이름은 일제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 비문의 주인공인 김씨부인은 당나라로 이주한 신라김씨의 후손이었다. 이 두 비문을 통해서 신라의 김씨 왕족은 스스로 흉노족의 후예를 자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코리아 인터넷 갤러리 역사/문화 자료] 신라민족론: 7-2 여러 가지 유래설에서 인용 http://me2.do/xFl48gws )
흉노. 신라시대에는 흉노가 북방의 오랑캐라는 개념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신라 왕족이 자기들의 위상을 높이려면서 하필 오랑캐인 흉노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였을까?
문무왕릉비의 기록과 당나라 김씨부인묘명의 기록을 볼 때 신라왕족 김씨들이 흉노의 후예임을 자처한 것 만은 분명한 것이고 사실여부를 떠나 신라왕족 김씨들이 흉노와 무관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흉노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였을 것 같지 않다. 자기들의 조상이 흉노인 것이 자랑스럽고 그렇기에 주저없이 비문과 묘명에 기록하지 않았겠는가?
아직 발견된 묘비명 외에 신라왕족이 흉노 휴도왕의 아들 화관지후 김일제의 후손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지만 이런 것을 살펴보면 함부로 흉노를 끌어 붙여 자기들의 위상을 높이려고 했다고 할 일이 아니다.
3. 세번째. 게르만족의 이동을 유발하여 로마를 멸망시킨 훈제국이 신라와 같은 민족.
아틸라가 이끄는 훈제국의 유물이 신라와 가야에서 발굴된 유물과 동일성을 유지하여 독일이나 미국 등 세계의 학계에서 신라와 훈족이 같은 민족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KBS 역사 스페셜에서 다룬바 있으며 내가 여기에 "세계3대 정복자. 알렉산더 징기스칸 아틸라.. 아틸라를 아십니까?"에 설명한바 있다.
KBS역사 스페셜에서도 신라왕족이 아틸라의 훈제국과 같은 민족으로 흉노의 후예설을 다루고 있다.
스키타이와 흉노, 신라의 고인골(古人骨)을 유전자 분석한 결과 상호관계가 하나의 그룹으로 묶였다고 한다.
스키타이는 황금문화다. 스키타이 지역의 하늘이 오로라의 영향으로 황금빛이어서 하늘빛을 황금빛으로 아는 스키타이인들이 황금을 유난히 숭상하였고 많은 황금 유물을 남겼는데 신라와 흉노의 황금유물들과 토템신앙 까지 민속과 풍습이 일치한다고 한다.
KBS의 역사스페셜에서 다룬 내용만 보더라도 신라 흉노 훈 스키타이는 같은민족으로서 민속과 풍습까지 일치했음을 알 수 있다. 아직은 더 연구하여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신라와 흉노가 같은 민족이라는 믿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 내가 쓴 훈족 아틸라와 KBS역사스페셜을 링크한다.
* 세계3대 정복자. 알렉산더 징기스칸 아틸라.. 아틸라를 아십니까? http://il11.tistory.com/170
* KBS 역사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http://me2.do/x8Kk4NNB
여기까지 흉노와 우리민족의 친연관계를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인(선인)들은 어땠을까? 물론 흉노와 우리의 친연관계를 알았다. 지금처럼 밝혀진 자료나 출토된 유물이 부족하였지만 볼 수 있고 알 수 있던 부족한 자료만으로도 흉노와 우리민족의 친연성을 알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돈이 없어 광개토대왕비를 가 볼 수 없고 그 탁본 마저 구할 수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그의 저서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에 우리민족과 흉노의 친연성을 언급하여 두었다.
단재는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흉노도 조선의 민족과 원래 同原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태고의 혹 동일한 치하에 있던 시대가 있었던 듯 하다. "
- 위키 문헌의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http://me2.do/x3JcOye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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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참고자료 =
* 율곤학회 신라문무대왕릉비 http://me2.do/55Y15Qky
☀ 문무왕 비문(신라 30대왕)- 1796년 경주에서 발견
1행 國新羅文武王陵之碑 及飱國學少卿臣金▨▨奉 敎撰」
2행 通三▨兵殊▨▨▨匡▨配天統物畵野經( )積德 匡時濟難應神 靈命」
3행 派鯨津氏映三山之( )東拒開梧之境南鄰▨桂之 接黃龍駕朱蒙 承白武仰」
4행 問盡善其能名實兩濟德位兼隆地跨八夤勲超三 巍蕩蕩不可得而稱者 我新」
5행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 )侯祭天之胤傳七葉以」
6행 焉 十五代祖星漢王降質圓穹誕靈仙岳肇臨 以對玉欄始蔭祥林如觀石紐坐金輿而」
7행 大王思術深長風姿英拔量同江海威若雷霆▨地 方卷跡停烽罷候萬里澄氣克勤開」
(중략)
24행 貺更興秦伯之基德」
(후략)
비문에 나오는 火官之后, 秺侯, 星漢王, 秦伯, 派鯨津氏 의 의미
화관지후 투후 성한왕 진잭 파경진씨
* 火官之后 - 『예기』에 나오는 화관(火官)을 이르는 것이라 하며,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나 소남자에 의하면 화관이란 재상과 동일한 직함이며, 이 화관에 역임하다 나중에 임금이 된 사람을 일컬어 화관지후라 불렀다고 한다. 화관지후는 고대에 불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불은 단순한 불이 아니라 해를 의미하며 불을 관장한다는 것은 불(해=천제)에 대한 제사를 관장하였다는 뜻이다.고대에는 불(해와 달)을 하늘나라 임금으로 섬겼기 때문에 불(해와 달)에 대한 제사는 천제의 아들(천자)을 칭하는 자만이 주관할 수 있었다.고대 기록에 가장 먼저 화관지후로 나오는 사람은 순 임금이다-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순(舜·재위 9년 BC 2320∼2312)
* 秺侯-투후는 한 소제가 김일제(BC134∼BC86)에게 내려 준 제후의 명칭이다. 한서 김일제전을 보면, 김일제는 흉노족 휴도왕의 아들로 한나라에 포로가 되어 지내다 한나라 7대 황제 무제(B.C 141년~87년)를 섬긴 공으로 무제 때 김씨를 사성 받고, 소제 때 투후 벼슬을 한 인물이다. 秺侯祭天之胤- 투후와 제천지윤은 같은 의미로 7대를 전하여 김일제의 5대손 星 뒤에도 2대나 더 투후 벼슬을 하였다. (BC 100년대)
* 秦伯-진시황제의 20대 선조인 춘추시대 진 목공(穆公) (재위-B.C 660년부터 B.C 621년) 진의 제9대 군주였던 목공은 작고 외진 곳에 있는 진나라를 북으로는 河西를, 서쪽으로는 西戎에 이르기까지 사방 12개국을 제패하여 진나라를 굳건한 기반에 올려놓은 인물이다-진백의 터전을 다시 일어켰다는 뜻.
* 派鯨津氏-"파경진씨"의 경진은 고래나루라는 뜻이고, 氏는 고래나루로 온 분이라는 뜻이다. 동해는 옛날부터 고래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 고래불 해수욕장이 있고, 포항의 옛 이름이 고래나루이고, 울산도 고래나루라고 불렀다. 즉 고래나루는 영덕, 포항, 울산 등지의 동해안을 가리킨다. 派鯨津氏는 김씨계 무리가 신라로 올 때 육로로 온 것이 아니라 바다를 통하여 고래나루 즉 동해안으로 왔으며, 투후를 지낸 분 또는 그 후손이 고래나루로 왔다는 뜻이다(BC 100년대)
(일부 사학자는 경진씨를 秦이 망하면서 일족을 안전지대인 지금의 경주나 밀양으로 파견한 휴도왕의 세력으로 해석한다)
지금까지 우리민족과 흉노와의 친연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흉노인가? 우리가 흉노의 후예인가? 기원전후 1천년 동안 동서양을 주름잡은 흉노가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가? 지구상에 역사상 존재했던 동이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다른민족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흉노가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다면 그들도 배달겨레이고 동이족이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동이인 우리 대한의 배달겨레는 흩어지고 사라져가는 동이를 다시 세워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온세계를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