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후예 흉노. 우리겨레가 흉노가아니고 흉노가 우리겨레 |
흉노. 흉노는 배달겨레(동이東夷)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흉노가 고조선의 후예로서 우리와 같은 배달겨레(동이족)라는 것이지 우리겨레가 흉노의 후예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오해는 우리겨레가 흉노가 아니고 흉노가 우리겨레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데서 생긴다.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비문에 흉노의 왕자 화관지후 김일제가 신라 왕족의 조상이라고 하였으니 흉노가 우리 배달겨레의 선조일까? 또한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이 국서에 고구려 동천왕을 흉노의 수장을 의미하는 선우라고 하였다고 하여 흉노가 우리의 선조일까?
기원전 5~6세기에 나타난 흉노는 활동지역이 완전히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과 겹친다. 그러므로 그 땅에 살던 사람들 즉 배달겨레가 흉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흉노는 배달겨레라는 말이다. 그러니 태종무열왕이나 동천왕이 배달겨레이므로 흉노인 것이지 흉노이므로 배달겨레인 것은 아닌 것이다. 배달겨레가 흉노가 아니고 흉노가 배달겨레인 것이다.
.밝 누 리.
흉노. 진시황이 무서워서 만리장성을 쌓았고 한고조 유방이 굴욕을 참고 화친조약을 맺었던 흉노.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그리고 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비문에 등장하는 흉노의 왕자 화관지후 김일제가 과연 신라왕족의 선조일까?
AD 4~5세기에 걸쳐 동서양의 정복군주들이 배달겨레였음은 분명하다.
동아시아의 광개토태왕(廣開土大王, 374 ~ 413) 과 유라시아 훈족의 아틸라(406년 ~ 453년)가 그들이다.
아틸라(고노르드어: Atle, Atli, 독일어: Etzel, 406년 ~ 453년)는 훈족 최후의 왕이며 유럽 훈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
아틸라는 434년부터 죽을 때까지 8년 정도, 유럽에서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으며, 그의 제국은 중부 유럽부터 흑해, 도나우 강부터 발트 해까지 이어졌다. 그는 훈족의 그의 삼촌 루아가 죽자 그의 형 블레다와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설과 블레다가 실질적인 왕이고 아틸라는 2인자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설이있다. 어찌되었건 아틸라와 블레다는 서로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였는데 443년 블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블레다의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지지않았는데 사냥 도중 사고로 인한 죽음이라는 설과 아틸라가 죽였다는 설이 있다. 블레다가 죽은 뒤 아틸라는 훈족의 유일한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아틸라는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 최대의 적이었으며, 발칸 반도를 두 번 침공하고 두 번째 침공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에워쌌다. 현재의 프랑스로까지 진격, 오를레앙까지 나아갔으나 샬롱의 전투에서 뒤로 물러섰다. 아틸라는 452년 서로마의 발렌티아누스 3세 황제를 수도 라벤나에서 몰아내기도 하였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 클릭 http://me2.do/FzDjAWVC)
흉노가 신라왕족 김씨의 조상이라고 한다.
흉노왕자 김일제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비문에 기록이 되어 있고 그 외 여러가지 증거를 볼 때 흉노가 신라 김춘추의 조상인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또 그 보다 더 명확한 증거도 있다.
고구려 동천왕은 지나(China 支那) 삼국시대에 요동을 위나라와 다투었다.
이 때 오나라의 손권이 보낸 국서에 동천왕을 선우單于라고 호칭하였다. 국서가 무엇인가? 현대에도 나라와 나라사이에 국서를 보낸다면 서로 상대 나라의 국가명과 국가수반의 이름을 명확히 기록한다.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 삼국 가운데 한 나라인 오나라의 황제 손권이 동천왕을 선우라고 호칭하였다.
이는 오나라 손권이 고구려를 흉노라고 보았고 동천왕을 흉노의 수장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이 흉노란 말일까?
물론 그렇다. 우리민족은 흉노와 동족이다. 4~5세기에 유럽를 석권한 훈제국이 신라계라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 배달겨레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아 막으려고 한 바로 그 흉노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말, 우리민족이 흉노란 말에는 커다란 오해가 숨어 있다.
그 것은 우리겨레가 흉노가아니고 흉노가 우리겨레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흉노가 누구인가? 흉노는 기원전 5~6세기에 나타나 기원후 2~3세기에는 거의 소멸 되었고 5~6세기에 완전히 사라진 민족 이다. 그런데 그 활동지역이 완전히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과 겹친다. 그렇다면 흉노는 고조선의 후예가 분명하다. 이 것은 후에는 선비족의 당나라나 몽골족의 원나라에 까지 이어진다.
고조선의 후예가 동양에서 흉노제국을 세웠고, 고구려를 세웠고, 선비의 당나라를 세웠고, 몽골의 원나라를 세웠고, 여진의 청나라를 세웠고, 서양에서 유라시아에 걸쳐 훈제국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 고조선의 후예가 흉노이고 부여 고구려 선비 몽골도 되는 것이다.
고조선의 후예 흉노. 우리겨레가 흉노가아니고 흉노가 우리겨레이다.
자랑스러운 배달겨레 흉노이다.
고조선의 후예인 배달겨레가 흉노이고 고구려이고 당나라이고 몽골이고 훈제국이라 사실을 간과하지 말자.
아래에 몇 가지 참고자료를 링크한다.
*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흉노도 조선의 민족과 원래 同原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태고의 혹 동일한 치하에 있던 시대가 있었던 듯 하다. " <== 클릭
http://me2.do/GfXGSJ4i
* 네이버 검색 "손권의 국서 동천왕"
- 흉노.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동천왕에게 보낸 국서에 선우(흉노의 왕)라고 호칭 <== 클릭 http://me2.do/xqHqKMt3
* KBS 역사스페셜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 클릭 http://me2.do/GbzMR3sq
* 훈족의 흉노유래설과 신라김씨의 흉노유래설 <== 클릭 http://me2.do/GYlb6SVW
역사교육
이구동성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서는 계륵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다. 더우기 이 글과 같은 흉노나 훈제국 이야기가 나오면 미리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일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잘못인 것이다.
지나인支那人들은 지역역사주의를 채택하여 현재 지나支那 영토안에 있는 모든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그렇기에 원(몽골) 발해 고구려 부여 고조선의 역사가 다 자기들의 역사라고 하고 동이족임을 인정하는 치우천왕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삼조당三祖堂에 모시기 까지 하였다.
역사교육을 학교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틈틈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역사가 되어서 나쁘겠는가?
요즘 신문 뉴스에 나오는 역사교육의 모습을 보자.
* [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왜 독립운동을 했을까 <== 클릭 http://me2.do/xN1fwPJ6
교실에서는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다”는 교사의 말에 학생은 “왜 일등박문이 아닌 이등박문을 죽인 거냐”고 질문한다. 한술 더 떠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장군들이 나라를 지켰는데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왜 의사들이 했냐”는 황당한 질문도 나온다.
* [종합] 朴대통령 "고교생 69% 6·25 '북침' 응답 충격적" <== 클릭 http://me2.do/F6kvZ8hV
-* "고교생 69% 북침"에 놀란 朴 '오버' <== 클릭 http://me2.do/x3J7rCTG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사자성어 '견문발검(見蚊拔劍-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며 덤빈다
고조선은 배달겨레의 나라이다.
그 후예들이 흉노, 부여, 고구려가 되었다. 흉노는 기원전 6세기 부터 기원후 3세기경 까지 전성기였다. 그리고 같은 사람들이 같은 땅에서 고구려가 되어 동천왕은 선우로 인정받았으며 광개토대제는 동아사아를 정복하였고, 흉노 가운데 일부가 유라시아로 가 훈제국을 세웠으며 그들 가운데 아틸라는 유럽을 정복하여 대제국을 세웠다.
고조선도 흉노도 부여도 고구려도 훈제국도 선비도 거란도 원(몽골)도 여진도 모두 배달겨레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가슴속에 역사를 녹이고 몸에 역사를 담아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에게 이야기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이 이 같은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져서 우리겨레 모두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역사인 나라가 되면 좋겠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