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목이 퉁퉁 부은 아가씨. << 93/10/19 14:16 >>

노변정담

양손목이 퉁퉁 부은 아가씨. 93/10/19 14:16 | 조회수 74
나일정

  저도 희숙님의 입성을 환영 합니다.
앞으로 산사랑을 빛내 주시듯 원로방도 빛내 주세요.

  삼척 "청"님의 열차안 풍경을 보고 생각 나는게 있어서요.
열차 안에서 내게 맞아 양손목과 손등이 퉁퉁 부은 아가씨 이야기 입니다.

  이십여년전, 그러니까 71년의 일 입니다.
혼자서 무전 여행을 나서서 경북 영천엘 당도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을 하루 지난날 초저녁 영천역에서 중앙선 완행 열차를 타고
서울을 가는 기차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열차에 오르기 전부터 자꾸 눈이 마주치던 아가씨가, 완행 열차가 도착하자
자리를 잡으려고 허둥지둥 하였는데 앉아서 보니 옆자리에 앉았지 뭡니까.
출구옆 다른 좌석 보다 약간 좁은 자리인데, 처음엔 서로 모른척 앉았다가
빠----ㅇ 들려오는 열차의 기적 소리와 간혹 정차하는 역에서 사람 오르고
내리는 소리 그리고 덜커덩 거리는 바퀴 구르는 소리속에 밤은 깊어 갔습니다
무료하기도 하고해서 베낭을 앞에 놓고 화투를 꺼내어 패를 띠다가 일순간
용기를 내어 화투를 치자고 하였지요. 팔목 때리기......
그 아가씨는 내게 팔목을 맞다가 아프니까 손을 바꾸어서 맞았고 또 아프다며
손등을 때리라하여 양손목을맞다가 약이 오르는지 날 때릴때면 거의 주먹을
내려 패듯이 내 팔목을 때렸지만 나야 뭐 아플리가 있었겠어요?
  드디어 그 아가씨 이젠 아프니까 특기 자랑을 하자고 하잖아요.
특기 자랑!? 그거 있잖아요. 노래 부르기.
둘은 옆의 다른 사람들 들을까봐 귀에대고 조그만 소리로 노래 부르기를 
수차례, 그런데 이 아가씨가 갑자기 경북 웅변대회 여고부에서 우승한 실력
이라며 제 귀에대고 웅변을 하지 뭡니까.
 무장 공비에게 "공산당은 싫어요"하고 소리치고 살해당한 이 승복 어린이를
주제로 한 것인데 참 잘 하더라구요.
 드디어 열차는 밤을 세워 서울역에 도착 했고 둘이는 우선 아침식사를 한후

사진을 한 두판 찍고 헤어 지면서 내집 주소를 알려 줬지요.
 약 보름후 집에 당도하니 그 아가씨에게서 편지가 와 있는데
 "부어 오르고 멍이든 양 손목은 쓰리고 아프지만, 그 완행 열차의 기적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는 등, 
만리 장성의 편지가 여러통 와 있더군요.
 그후 그 아가씨와 펜팔 이란걸 약 2년 하였는데 지금 같으면 하이텔을 이용

했을 테지요.
 지금쯤은 어엿한 주부로 엄마로 변하여 잘 살고 있겠지만, 
"청"님의 열차안 풍경을 보고 문득 옜생각이 나서 몇자 올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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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PC통신 하이텔 원로방의 노변정담에 93.10.19일 제가 올렸던 글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희숙님은 산사랑 동호회에서 활동하다 원로방에 가입한 분이고

삼척의 청은 최근에도 노변정담에 올린 글에 간혹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 이야기는 71년 제가 무전여행을 하던 때의 이이기 입니다.
93년에 이 글을 쓸 때 이미 20년이 흘렀었고, 이제는 40년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젊은이들도 저렇게 베낭메고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읽으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내게 팔목과 팔등을 맞다가 노래를 부르고 웅변을 한 그 아가씨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초로의 앞선이가 되어 멋진 삶을 살고 있겠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추억을 쌓아 가는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듦니다.


앞서 살아온 지혜로 어린이 젊은이를 지도하고 앞서가는 앞선이.
앞선이는 어린이 젊은이에 대하는 늙은이, 노인, 고령자를 이르는 새로운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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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 누 리. 나 용 주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

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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