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방元老坊, '원로방 교실敎室'을 출판하고 '원로방 교실'을 열고... 1992년 개설된 원로방元老坊은 세계 최초의 고령자 PC통신클럽 |
원로방은 기네스북에 몇 가지가 오를 수 있을만한 우리나라 앞선이 단체이다.
왜倭의 "옐로우 소사이어티 포럼" 미국의 "시니어 네트"와 교류하며 우리나라의 정보화시대 구현의 한축을 담당하였다. 원로방은 채팅을 활용하여 전국전자회의를 열기도 하였는데 이 것도 고령자가 세계최초로 PC통신으로 전국을 연결하여 전자회의를 한 것이었다.
1994년 열린 이 "원로방 전국전자회의"에는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던 김영삼과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가 축사를 보내 오기도 하였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렇게라도 원로방의 태동기를 설명하고자 이 글을 쓴다.
원로방(*)은 원로들의 고을 혹은 원로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요즘 흔한 PC방이나 빨래방 등에는 방房을 쓰지만 원로방은 방坊자를 쓰는데 이는 새김이 '동네 방' 혹은 '고을 이름 방'이니 일반 방房과 뜻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新羅坊이 이 방坊자 사용의 전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 * 원로방 1992년 창설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고령자 컴퓨터 그룹 )
"앞선이의 슬기로운 삶을 열어가는 원로방"
60세 이상 앞선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원로방은 20년 역사를 넘어 21년이 되었기에 초창기에 활동하던 분들은 이미 별세하신 분들도 많다. 나는 원로방 초기부터 봉사회원으로 참가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기에 원로방의 지나온 날들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지만 이 글이 원로방의 역사나 연혁이 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차분히 역사서를 쓰는 마음으로 객관적 자료를 붙여서 원로방의 역사를 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단순히 한담閑談을 하는 것이다. 이런 토막이야기들이 모여 나중에 원로방이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아는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원로방 교실(元老坊 敎室)
"원로방 교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앞선이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장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이 교육장에서 사용하는 교재의 이름이 "원로방 교실"이었다.
1992년에 창설한 원로방 활동을 하면서 당시 유경희 대표시삽(Sysop - System operator)의 청에 의해 "원로방 교실"이라는 PC통신활용법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책이 '원로방 교실'의 교재였다. 그리고는 내가 쓴 교재로 강의를 하였다. 책의 출판비용은 "한국PC통신(*)"에서 지원 받았다. 시간에 쫒기면서 어렵게 탈고하여 책이 나오자 몇몇이 그 책을 보면서 환호성을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 * 한국PC통신 - HiTEL의 전신 KTH파란을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모바일 플랫폼 전문회사로 변하였음 )
이 뒤로 "원로방 교실"에 얽힌 일화는 많다.
70세야 그렇다지만 80넘은 고령자가 '원로방 교실'에 오신 일. 지팡이를 짚고 오셨던 분이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걷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고, 현재(2013.05.16 목요일) 국회의원 겸 장관인 분의 부친께서 75세가 넘으신 고령으로 열정적으로 참여한 일이며. 안동, 원주, 수원, 안산, 광주, 성남, 부산 등 전국 곳곳에 원로방 교실을 열어 생업을 제쳐 두고 지방에 1주일 씩 머무르며 강의한 일이며, 때로는 TV 혹은 신문사에서 나와 '원로방 교실'의 모습을 취재하여 가 그 모습이 TV에 방영된 일이며, 영어 알파베트를 모르는 분이 참가하여 문구사에서 알파벳이 있는 책받침을 사다 놓고 수업하던 일이며, 노안으로 키보드 자판이 잘 안 보여 돋보기를 들고 글자 한 자를 찾는데 수 분씩 걸린 일이며, 55세 이하의 봉사회원들이 도우미를 자청하여 수업을 도운 일이며, 탈렌트 사OO과 인터뷰하면서 할머니라고 했다가 무슨 말이냐고 사OO양이라고 항변하는 것을 들은 일이며... 비보도 있다. 당시 75세의 고령의 이OO어른이 운전면허를 내었는데 후진하다가 은성여사(이O악)를 치여 돌아가신 일을 비롯하여 때로 들리는 어른들의 숙환이나 별세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하곤 하였다.
당시는 인터넷은 없었다.
모뎀으로 연결하는 PC통신 시대였다. 그렇지만 교육생 20~30명이 동시에 모뎀으로 PC통신을 하면서 교육할 장소가 거의 없었다. 방법은 오직 하나, 한국통신(현 KT의 전신)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산전화국, 영등포전화국, 지역정보화 센터 등 서울과 각 지방의 한국통신의 시설을 주로 이용하였다. 20여대의 컴퓨터를 설치하고,전화회선을 깔아 연결하고, 마이크나 칠판 등 교보재를 마련하는 일이 퍽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공중전화 낙전으로 제작하여 무료로 보급하는 하이텔 단말기가 PC통신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장비였다는 것이다.
당시 체우회 원로방 교실이나 용산 전화국 등에도 하이텔 단말기를 교육 장비로 활용하였었다.
첫 원로방 교실은 1993년 초에 서울시청뒤의 체우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체우회, 체신우편공무원동우회, 한국통신에서 체우회 사무실에 단말기 20여대와 전화회선 20여대를 설치하여 준 것이다. 이 교육의 명칭은 "체우회 원로방 교실"이었다. 난 자가용을 몰고 체우회 주차장에 세운후에 1기와 2기를 강의하였고, 이 때 교육생으로 참가하신 많은 분들이 지금 우리나라 앞선이(고령자) 정보화 교육의 선봉에 서 계신다. 위의 신문기사에 나오는 이영만 회장님도 "체우회 원로방교실 1기"를 수료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단법인을 결성하기도 하고, 임의단체에서 활동하시기도 하고,
20여년이 흘렀으나 '원로방 교실'은 지방이나 단체에 따라 더러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통신과 협의하여 '원로방 교실'을 열 수 있는 준비가 되어도 앞선이 들을 교육장에 모시는 일이 퍽 어려운 일이다. 나이 60넘어서 무슨 컴퓨터를 배우냐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분들이 거의 안 계시겠지만 1993년, 지금부터 20년 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나오는 말이었다. 일단은 전화국에서 기념품을 마련하였다. 기념품이라고 해야 등 긁게나 수건 한 장 등 단순한 기념품에 불과했으나 설명회에 어른들을 모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음으로는 지역의 노인회나 노인당 등 노인단체에 설명회 참가자를 초대하는 일이다. 어떻게든 최소 100여분은 모셔야 수강생을 채울 수 있다. 이렇게하여 어렵게 설명회가 열리면 대표시삽의 인삿말을 필두로 이미 PC통신을 하고 계시는 어른들이 컴퓨터를 배우라는 강연을 한다.
이 때는 나도 연사의 한 사람이었다.
60세 이상 앞선이들께 컴퓨터를 배우자고 설명회를 할때면 나는 연단에 나가
"정보화시대가 무엇이냐?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게 되는 것이다. 앞선이라하여, 나이가 60이 넘었다고 하여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가? 고종이 단발령을 내렸을 때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여 자살을 하면서 까지 상투 자르는 것을 마다하였지만 지금 상투틀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앞으로 20년 30년이 지나면 지금의 30대 40대가 60대가 될 것이고 그리되면 어차피 앞선이들이 컴퓨터를 하는 시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저말고 컴퓨터를 배우자. 정보화만이 살길이라고 하는데 앞선이들이 컴퓨터를 배워 손자 손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는 것은 애국이다."
라고 열변을 토하였고, 그렇게 20~30명을 모집하여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므로 PC통신을 가르치는 '원로방 교실'을 열었었다.
(이 부분은 내가 2013.05.09 여기에 올린 "NHN '각'. '디지털 장경각'.. 웹에 쓴 메시지 한 줄이라도 영구 보관..."에서 인용)
그렇게 설명회를 마치고 교육참가신청서를 받는다.
보통 참가자의 40명 정도가 신청서를 낸다. 그러나 막상 본 교육장에 나오시는 분은 15~25명 정도의 인
원이다. 이분들을 모시고 20명을 기본으로 '원로방 교실'을 개설하여 강의를 한다. 하루 4시간씩 월~금
요일 5일동안 열심히 강의하고 열심히 익힌다. 그리고 마지막날 수료식을 하고, 수료증을 수여하고, 지역이나 직능 원로방을 결성한다.
지역은 광주, 대구, 부산 등 지역명에 원로방을 붙인다.
직능은 체우회 삼락회 박약회 등 단체명에 원로방을 붙인다.
이렇게 하여 전국 각지에 원로방이 만들어 지고, 각 원로방 별로 '원로방 교실'이 열리고, 회원수가 점차 늘어나고, 1995년 까지 원로방은 이렇게 태동기를 보내고 있었다.
1992년 개설된 원로방元老坊은 세계 최초의 고령자 PC통신단체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렇게라도 원로방의 태동기를 설명하고자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원로방의 역사나 연혁을 쓰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서 그치지만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또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마 원로방 초기의 활동을 생각나는대로라도 기록하여 두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