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希靜'. '10.26사태와 '희정希靜'을 생각하면서...

 

  '희정希靜'. 바랄 희希, 고요할 정靜. 글자를 그대로 풀이하려고 해도 무척 어렵다.
쉬운 말인 것 같은데 연결이 잘 되지 않지만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면 뭐라 풀 것인가.
 "희망希望을 가지되 경거망동하지 말고 조용하라(정靜. 고요할 정)"는 뜻인가?
나는 '희정希靜'이란 글을 10.26 사태가 나던날 아침에 어떤 서예가로 부터 받았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밝  누  리.

  우리나라엔 사태가 많다.
10.26사태. 12.12사태. 광주사태  등등. 그런데 사태란 말들이 세월과 함께 바뀌어서 다른말들로 불리지만 난 여전히  사태란 말이 더 친숙하다. 다른 이름들이 붙었지만 난 그냥 사태라고 하는일이 더 많고 이 글에서도 사태라고 할 것이다.


먼저 12.12사태. 난 그런일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라고 해야할까?
다음 5.18 광주사태. 일주일 휴가 끝에 05.17 근무처에 가니 시내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뭐하려 나왔느냐? 빨리 집에 가라고 하여 사태가 종료 되는 26일까지 집에서 사태가 진행되는 양상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겪었다.
10.26 사태. 지금 이 글이 10.26 사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어떤 서예가와 새벽을 맞았는데 라디오에서 이상한 음악이 흐르더니 대통령이... 우린 당시 어안이 벙벙하다는 딱 그 모습이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새벽
나는 우리나라 5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어느 도시의 허름한 여관방에서 어떤 서예가 한 분과 새벽을 맞았다. 서예가란 슥슥 글자 몇 자 써주고 돈을 버는 것 같지만 퍽 고단한 예술가다. 다른 예술가나 서도가도 다 그렇겠지만 그분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운동을 하고 벼루에 먹을 갈아 서예에 몰입한다. 서도書道라고도 하고, 서예書藝라고도 하고 예술가가 혼신을 다한다지만 옆에서 보기에 퍽 고달픈 생활을 하였다.


내가 아는 그분은 몇 차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붓을 들고 종일 오당지 같은 비싼 종이에 글을 쓴다. 그런데 옆에서 보기엔 다 같은 글인데 서예가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분명 똑같이 보이는데 썼다가 찢어 버린다. 글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를 몇 시간을 되풀이하면서 점차 지쳐간다. 마음도 지치지만 몸도 함께 지친다.
  이러다 어떻게든 빨리 서예가의 뜻대로 작품이 되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작품이 안되어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급기야 붓을 손에 든채 정신을 잃고 만다. 인사불성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요즘이야 119 구급대도 있고, 129 보건복지콜센터를 불러 응급후송을 할 수도 있지만 1970년대는 천만의 말씀이었다. 업고 달리고, 급하면 리어카에 태우고 달리고, 택시도 도심지가 아닌 시골지역에서 이런일을 당하면 급하게 부를 수 없어 허둥대는 일이 벌어졌다.


  그 서도가와 난 여관방에서 10월 26일 새벽을 맞아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러 라디오 채널이 거의 비슷하게 장엄한 분위기의 서양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리 저리 돌려 봐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아침을 맞았다.


기억엔 08시 30분쯤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에서 대통령이 유고라고 하였던 것 같다. 김재규라거나 총기사용이라거나 하는 말은 들은 것 같지 않다. 너무 어안이 벙벙하여 둘은 정말 입을 쩍~ 벌리고 놀라고 있다는 말이 가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고는 라디오 방송에 계속 귀를 기울이는데 더 알만한 정보는 없었다.

 

그런데 그 서예가가 오당지에 커다랗게 글자 두 자를 썻다.

'희정希靜'??

 

 이 무슨 말인가?
그 서도가는 여러가지 독특한 품성이 있는 분이었다.
일필지휘一筆之揮, 한 번 붓을 놀리면 다시 덧칠하거나 가필하는 법이 없었다. 딱 한 번 쓰고 나면 그만이었다.
그분은 사람들이 글을 받으러 오면 즉석에서 그 사람의 성품에 맞는 글을 써 주었다. 써 두었던 것을 꺼내어 낙관하여 주는 것을 싫어 하였다. 보는 앞에서 즉석에서 써서 낙관을 하여 주는 것이다.
  물론 반야심경과 같이 몇 폭이 되는 장문의 글은 그럴 수 없다. 모세의 십계명도 십폭 병풍으로 쓰는데 지나支那성경을 가져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는 한자만 대치하여 넣어서 병풍으로 내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주 남미주 구주(유럽) 지역까지 전시회를 하신 분이다.


일필지휘一筆之揮, 10.26 사태, 이 때도 그랬다.
갑자기 '희정希靜'이라고 써서는 낙관을 하여 내게 주었다.
글의 뜻이 궁금하여 물어 보았으나 웃음조차 짓지 않고 신중한 표정으로 잘 생각하여 보라고만 한다. 1979년으로 부터 34년이 지났으니 그 서예가도 이젠 80대가 되었다. 그러나 나도 그분께 이 글 '희정希靜'의 뜻을 묻지 않고 그분도 내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다만 나 혼자 나름대로 해석하여 볼 따름이다.
'희希'는 분명 좋은 의미이다. 희망希望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유고를 '희希'라할 수 있는가?
'정靜'은 고요할 정이니 조용함을 말한다. 대통령의 유고를 '정靜'으로 하라는 것은 맞는 것인가?
한문 실력이 없는 나로서는 아직도 이 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 혼자 나름대로 풀이를 하고 지금도 고민을 한다.


"어둠의 시대가 걷혔으니 '희希'지만 그렇다고 경거망동하면 안되니 '정靜'이라는 것이로 구나!"


맞을까?
지금도 궁금해 하면서 간혹 이 말을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즐겁되 경거망동하지 말라, 희망을 가지되 까불지 말라, '희정希靜'.. 서예작품은 딱 두 자 지만 족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흔한 불심佛心은 불佛의 획을 길게 늘여 쓰지만 '희정希靜'도 '靜'의 오른쪽 아래로 내려긋는 획을 길게 늘여서 쓴 다음 낙관을 하면 훌륭한 작품이 된다.

 

 

이 글이 때 아닌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다면 언제 때가 오겠는가?
살아가면서 겪은 이야기이고, '희정希靜'이 명심보감이나 동몽선습이나 사서오경四書五經 등 어느 책에도 없는 것 같지만 뜻이 좋으니 뿌리를 찾아보고 싶을 따름이다.
독자들 가운데 어느분이 이 '희정希靜'이란 말의 출전을 아신다면 알려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더 좋은 뜻풀이가 있다면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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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orea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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