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서 돌아오면... [시조時調 ?] " 원로만 사는 마을 " |
나는 시인詩人도 시조인時調人(?)도 아니다.
하지만 시와 시조는 항시 내 곁을 맴돌며 나를 풍요롭게 한다.
현대시조.. 봄이면 노산 이은상의 진달래꽃을 제일감으로 간혹 현대시조를 찾아 즐기면서 역시 시조의 3.4조 운율이 우리 점감에 맞다는 생각을 한다.
" 수줍어 수줍어 다못타는 연분홍이
부끄러 부끄러 바위틈에 숨어피다
그나마 남이볼세라 고대지고 말더라 "
아래의 '보리밭에서 돌아오면...'은 내가 1993년 06월에 어느 게시판에 올린 글인데 시조라고 한다면 옛시조도 신시조도 아니니 현대시조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이 지나버렸다.
< 보리가 익어가면 저녁놀이 일년 가운에 가장 아름다운 때가 됩니다. >
1993년 06월 11일 어느 게시판에 올렸던 " 원로만 사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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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만 사는 마을 "
굽은허리 토닥이며 들에있다 돌아오면
외양간의 송아지며 돼지막의 꿀꿀이며
대처로간 아들딸대신 가솔들이 반기누나.
뒤안밭의 상추캐어 앞여울에 다듬어서
두늙은이 저녁이며 가솔들의 먹거리며
요리조리 챙기며는 하루해가 가는구나.
개울너머 꺽정노인 행길건너 희양아제
땀은뻘뻘 진은절절 부친힘을 기울여서
깊는밤을 아끼면서 보리타작 하는구나.
허리굽은 우리할멈 미수가루 곱게빻아
이단지는 큰놈주고 요단지는 둘째주고
저단지는 큰딸주고 그단지는 둘째딸주고.
별은총총 달은휘영 이밤가면 언제일꼬
밤이깊어 새울어도 고단한줄 모르고서
사리사리 고운사연 바리바리 엮는구나.
이 글을 처음 올렸던 홈페이지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문을 닫기전 그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다운 받았기에 없어지지는 않았다.
지금이 07월이니 감자캐고 밀밭을 살필 때이고 윗 글과 같이 상추를 다듬고 미숫가루를 빻을 때이다.
난 지난주에 감자를 몇 박스 캤다. 이젠 보리밭이나 밀밭은 보기 어렵지만 감자밭은 여기저기 많고 나도 몇 이랑 심었더니 제법 씨알이 들었다.
< 집 마당의 방울 토마토. 붉은색을 띤 것은 다 따먹었다. >
귀농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필 귀농이 아니라도 우리집 마당엔 먹을 거리가 많다. 토마토는 방울토마토 까지 두 가지인데 마당에 나갈 때 마다 익어 있는 게 있어 곁의 수도꼭지에 씻어 먹는다. 그 옆의 오이는 잊을만 하면 먹을만 하여 역시 따서 과일 먹듯 먹는다. 또 가지도 그렇다. 간혹은 입가가 검어질까 걱정을 하면서도 드나들다 먹을만하다 싶으면 따서 먹는다.
식탁에는 상추 쑥갓 아욱 호박잎 호박 오이 가지 풋고추 파 명아주 쇠똥 머위 머윗대 등등 웰빙이니 참살이니 유기농이니 할 것 없는 농약도 화학비료도 전혀 주지 않은 채소와 나물들이 입을 즐겁게 한다.
여섯 살 아이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대단하다.
올챙이 개구리 도롱용올챙이 꼽등이 메뚜기 방아깨비 무당벌레 풍뎅이 달팽이 잠자리.. 이런 동물들도 생명이니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제법 파리도 잡아주고 풀잎이나 상추잎을 뜯어 넣어주긴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아이에게 잡아서 노는 것은 좋으나 죽어선 안 되니 미리 놓아 주도록 가르쳤다. 대개는 그날 잡은 것들은 다음날 아침에 놓아준다.
< 손바닥에 달팽이를 올려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 >
저녁놀은 일년 가운데 낮이 가장 긴 하지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어느 때라고 저녁놀이 아름답지 않을까만 지금(201.07.12 금)이 마침 아직 하지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퍽 아름답다. 아쉽게 장마와 겹쳐 구름사이로 지는해를 보는 때도 많지만 그 시간에 아이랑 저녁놀이 아름다운 하늘을 채운 된장잠자리를 쫒아 잠자리채를 휘두른다. 해지기 전에 사냥을 하여 배를 채우려는 잠자리는 이 시간에 유난히 날쌔다.
밀레의 저녁종이나 이삭줍기를 그릴만한 보리밭이 없어도 이렇게 즐기는 시간이 위 글의 " 원로만 사는 마을 "에서 "보리밭에서 돌아오면..."과 다를 게 있을까?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