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속 소나기에 '나체승우사건(裸體乘牛事件)'을.. 복날을 맞아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떠올리면서... |
아직 장맛비가 오락가락 한다.
달력을 살펴보니 입추가 08월 07일이다. 이어서 08월 12일이 말복이니 앞으로도 꼬박 한 달은 더위를 견뎌야 하겠다.
마음이 바빠서인가? 세월이 빨라서인가? 더위가 한창인데 흑야(黑夜)를 채운 개구리의 합창과 함께 가을의 전령사라는 귀뚜라미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달력을 넘겨 본다.
* 07.23(화) 중복 *08.07(수) 입추 *08.12(월) 말복 * 08.23(금) 처서 09.07(토) 백로 09.23(월) 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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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올 때 마당에서 큰 거품 일면 비가 많이 온다.
기온이 높은 상태에서 기압이 떨어지면 물속 유기물의 활동이 활발해 거품이 잘 생긴다.
* 장마 끝물의 참외는 거져 줘도 안 먹는다.
장마 때에는 강수량이 많아 과일의 맛이 떨어진다.
* 여름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
여름 소나기는 국지성이 강해 소의 잔등도 비를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이 갈릴 정도라는 뜻.
< 수주 변영로의 명정 40년. 범우사 간 >
여름 소나기. "여름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 속담을 읽으며 생각을 편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도 생각나지만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의 ‘백주나체승우사건(白晝裸體乘牛事件)’이 생각 난다.
백주나체승우사건. 말 그대로다. 대낮에 나체로 소를 탄 사건인 것이다. 수주 변영로가 영문학자이고 시인이고 수필가이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난 그의 "명정40년(酩酊四十年)"에 반했다. 20대에 이 책을 읽은 이래 잊고 있다가 또 찾아 읽으면 또 재미가 있다.
내게 있는 책을 보면서 ‘백주나체승우사건(白晝裸體乘牛事件)’의 개략을 옮겨 본다.
내가 가진 명정40년(酩酊四十年)은 1977년 발행한 범우문고본이다. 이 책은 표지가 까맣다. 거기엔 이 '나체승우사건'을 '백주(白晝)에 소를타고'라는 작은 제목으로 올려 놓았다. 수주시대가 나보다 한 세대 혹은 두 세대쯤 전이어선지 글이 구어체에 가까운 문어체여서 읽기가 재미있다.
'백주(白晝)에 소를타고'
역시 혜화동 우거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하룻날 바커스의 후예들인지 유령(劉伶)의 직손들인지 몰라도 주도(酒道)의 명인들인 공초(空超 吳相淳)ㆍ성재(誠齋 李寬求)ㆍ횡보(橫步 廉尙燮) 3 주선(酒仙)이 내방하였다.
-이하. 요약-
술값이 없던 그들은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에게 사람을 보내 술값을 부탁했다. 인촌이 선뜻 준 50원(圓)을 가지고 이들은 소주 한 말과 쇠고기를 사들고 성균관대학(成均館大學) 뒷산으로 올라갔다. 객담(客談)ㆍ농담(弄談)ㆍ치담(痴談)을 섞어 주기(酒氣)가 한껏 올랐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득,
“우리 모조리 옷을 찢어버리자.”
는 공초(空超)의 발의로 모두 탈의(脫衣), 일사불착(一絲不着)의 나체가 되었다. 옷이란 대자연과 인간 두 사이의 이간지물(離間之物)인 이상 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언덕아래 소나무 그늘에 소 몇 필이 매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번에는 누구의 발언이거나 제의였던지 이제 와서 기억이 미상하나 소를 잡아 타자는 데 일치하였다. 이들은 일사불착(一絲不着)의 나체로 옆에 매인 소를 타고 비탈길을 의기양양하게 내려갔다. 백주(白晝) 적안(赤顔)의 이 ‘나한(裸漢)’들은 시내로 진출하려는 장도(壯圖)를 도중의 일대 소동으로 포기했지만, 심기(心氣)는 먹구름 덮인 하늘을 뚫고 치솟을 수 있었다.
( 1977년 발행 범우문고 명정40년酩酊四十年에서 발췌, 일부 요약 )
수주, 공초, 성재, 횡보, 이런 사람들이 소주 한 말을 마시다가 소나기를 만나 공초의 제의로 나체가 된 후 들에 매어진 소를 타고 서울 명륜동에서 공자를 모신 성균관을 지나 큰 거리까지 진출한 것이다.
1920년대 우리 선배들의 기행이지만 왜정倭政치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수주가 어려서 술독에 빠질일 부터, 술을 마시고 친구 집에서 자다가 화장실을 잘 못 찾아 안방을 침투하여 1년 가까이 그 친구와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지난 일 등 아무튼 이 명정40년(酩酊四十年)에는 갖가지 술을 마시고 벌린 기행 기담이 실려 있어 몇몇 젊은이들에게 권하였지만 한자(漢字)말이 힘들다고 읽다 중단하는 것을 보았는데 장맛철 소나기를 보면서 ‘백주나체승우사건(白晝裸體乘牛事件)’을 떠올리고 있다.
술에 대한 이야기라면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나는 자칭 국보1호라는 양주동(梁柱東) 박사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몇 해 전부터 노리고 있다.
어떻게 문주文酒인가? 예로부터 주태백이란 말이 있지만 양주동 박사도 주당酒黨이었을까?
양주동 박사는 1903년생이니 내가 중학교 다니던 1967년 쯤에는 나이가 65세쯤이었을 것이다. 그 때도 보신탕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다툼이 있었는 것 같다. 그 때는 흑백 TV였는데 토론에 참가한 양주동 박사가 의견을 내 놓았다.
"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라하여 먹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다.
다만 자기집에서 기른 개나 애완견을 먹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양주동 박사는 얼굴이 옥상에서 떨어뜨린 메주처럼 찌그러졌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양주동 박사가 나온 그 토론을 더 관심을 갖고 보았었던 것 같고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박사의 고견에 탄복하였었다. 지금이 초복지나 중복이 내일(2013.07.23 화)인데 복땜을 뭘로 할까? 우리나라는 아직 개의 유통이 위생상태가 나쁘다는 기사를 연일 보았는데...
몇 년전 범우문고의 목록을 보다가 양주동 박사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발견하고 보겠다고 생각하였으면서 수년째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 문文과 주酒를 제목으로 사용하였으나 문文을 이야기하였더라도 주酒를 빠뜨리지 않았을 것 같아 문文도 관심이 가지만 그보다 주酒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삼복더위 한 가운데서 장맛비 소나기를 보면서 ‘백주나체승우사건(白晝裸體乘牛事件)’을 생각하고, 개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면서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를 생각하는 것을 누가 탓하랴......
< 자칭 국보 1호 양주동 (梁柱東) 박사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
중복, 입추, 말복, 처서, 백로, 달력을 짚어 보면서 마음은 가을을 향해 달린다.
봄에 뿌리고,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감추고, 나이들면 세월이 빨라진다더니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절실히 느낀다.
잠자리 나르고 보고 귀뚜라미 울어대는 것을 들으면서 벌써 가는 여름이 아쉽다.
정열의 여름, 풍성함을 키우는 여름을 즐겁게 보내야 하겠다.
.밝 누 리.
[밝은 우리의 온 삶터]
-밝은 밝음이며, 온은 따뜻함(溫)이고 모두(全 온통)이며, 누리는 살아가는 세상이고 살아가는 역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