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빚은 단풍 불타오르는 '구례 화엄사 사진 23장 있습니다. 꽃 그림을 크릭하세요. 인터넷 남강회 송석
| | ▲ 화엄사 담장에 단청을 입히고 있는 단풍 | | | | 남도의 단풍은 느릿느릿 다가온다. 남도의 품에 안긴 단풍은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좀처럼 꺼질 줄 모른다.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는 벌써 첫눈이 소복히 내렸다고 하지만 지리산 산마루에서 타오른 잉걸불은 이제서야 계곡을 향해 울긋불긋한 혓바닥을 쏘옥쏙 내밀기 시작한다. 섬진강에서 피어오르는 뽀오얀 물안개를 헤집으며 구례 화엄사로 갔다.
지리산을 끼고 촐싹대며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화엄사로 가는 길 곳곳에는 재첩국을 파는 식당들과 찻집들이 뽀오얀 안개 속에 실루엣처럼 가물거린다. 마악 빨강 물감을 칠하는 벚꽃 잎과 군데군데 때늦게 피어난 하얀 차꽃이 동그란 물방울을 데르르 굴리고 있다.
안개. 가도 가도 안개 속이다. 그래,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것도 앞을 보얗게 가린 안개 속을 천천히 더듬어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한순간 발을 헛디디면 언덕 아래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이정표를 잃고 나아갈 길조차 잃어버린 채 이러저리 헤매는 이 짙은 안개 속처럼 말이다.
| | ▲ 화엄사 일주문 들머리에 줄줄이 세워진 부도 | | | |
| | ▲ 화엄사 입구 | | | | 화엄사 들머리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가 싸악 걷히며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짙푸른 가을 하늘을 물고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개 걷힌 화엄사 계곡 곳곳에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무지개빛 가을 햇살도 너무나 눈부시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귀엽게 쓰다듬으며 흐르는 계곡물이 몹시 달게 느껴진다.
백제 성왕 22년, 서기 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웠다는 천년 고찰 화엄사(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번지). 화엄사 일주문 왼편에는 종 모양의 부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부도밭 곁에는 이제서야 가을 내음을 맡았다는 듯 연초록 물감을 칠하고 있는 나무들과 '이 게으름뱅이' 하면서 시뻘건 불꽃을 활활 태우고 있는 나무가 사이좋게 어깨를 끼고 있다.
화엄(華嚴). 화엄이란 사람이 여러 가지 고된 수행을 하면서 만덕을 쌓아 그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다. 화엄사의 '화엄'이란 말도 화엄경의 '화엄'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가람 안에는 각황전(국보 제12호)을 비롯한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등 수많은 문화재가 즐비하다.
| | ▲ 지금 화엄사 주변에는 단풍이 한창이다 | | | |
| | ▲ 화엄사 곳곳에 서있는 국보나 보물을 어찌 이 아름다운 단풍에 비길 수 있으랴 | | | | 지리산 최고의 가람 화엄사는 연기조사가 처음 세울 때만 하더라도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뒤 선덕여왕 12년, 서기 643년에 자장율사가 증축했고, 헌강왕 1년, 서기 875년에 도선국사가 다시 증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화엄사 또한 전국의 여느 가람처럼 임진왜란 때 불타고 만다.
그때부터 한동안 화엄사는 불에 그을린 흔적만 쓸쓸히 남긴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하마터면 그렇게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화엄사는 인조 8년, 1630년에 벽암선사가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 뒤인 인조 14년, 서기1636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북동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금강역사와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모습을 세워 놓은 천왕문에 다다른다. 화엄사의 특징 중 하나가 이 천왕문이 금강문과는 서쪽 방향으로 빗겨 놓았다는 점이다.
가람의 대문 역할을 하는 금강문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으면 그 문을 넘나드는 수행자들에게 방해라도 된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천왕은 불국정토의 외괵을 맡아 지키는 수호신이라서 그렇게 비껴 세워 놓았을까.
| | ▲ 화려한 화엄의 세계를 보여주는 화엄사 단풍 | | | |
| | ▲ 화엄사 경내 | | | |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로 가는 길 곳곳에도 시뻘건 단풍이 화엄을 태우고 있다. 마치 화엄의 사리을 꼭 만들고 만들겠다는 듯이. 이곳 보제루도 특이하다. 여느 가람의 보제루는 대부분 보제루 밑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보제루의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가람 안에서 바라보면 동, 서 5층석탑(보물 제132호, 133호)이 사선 방향으로 우뚝 서 있다. 동탑의 윗부분보다 한단 높은 곳에는 대웅전(보물 제299호)이 부처님처럼 앉아 있고, 서탑 위에는 각황전(국보 제67호)이 금세 지리산의 푸르른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양쪽 날개를 한껏 펴고 있다.
한때 장육전(丈六殿)이라고도 불리웠던 각황전 앞뜰에는 국보 제12호로 지정된 국내 최대 규모의 석등이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각황전 왼편에는 화엄사를 세운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웠다는 탑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국보 제35호)이 있다. 각황전 안에는 국보 제301호 영산회괘불탱이 그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 | ▲ 국보 제12호 각황전 | | | |
| | ▲ 강원도 산간마을에는 눈에 왔지만 지금 지리산 자락에는 핏빛 단풍이 불타고 있다 | | | | 화엄사 경내 주변에 불타고 있는 아름다운 단풍들도 모두 국보 아니면 보물감이다. 마치 화엄사 주변에 화엄의 화려한 단청을 입히고 있는 듯하다. 아름답다, 는 감탄사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멋쩍다. 언뜻 붉게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국보인지 화엄사 곳곳에 서 있는 여러 개의 조각품들이 국보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저토록 화려하게 불타고 있는 단풍이 사람들이 만든 국보나 보물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픽 뀌면서 비웃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긴, 아무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대자연이 빚어내는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어찌 따라갈 수 있으랴. 어찌 대자연의 기기묘묘한 조화를 사람의 손재주에 비길 수 있으랴.
| | ▲ 이 아름다운 대자연의 세계를 사람의 손재주에 비기랴 | | | | 4사자 3층석탑 앞에 있는 石燈 역시 특이한 모습이다. 길쭉한 직사각형 拜禮石(배례석)을 놓고 화사석을 받치는 竿柱石(간주석:3개의 기둥) 안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人物像을 배치했다. 이 人物像은 한 손에 供養器(공양기)를 들고 4사자 3층석탑에 세워진 스님像을 정면에서 우러러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石燈 속의 人物像은 화엄사를 창건한 緣起祖師라 하고, 4사자 3층석탑의 스님像은 祖師의 어머니라고 한다. 효심이 깊은 祖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런 작품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孝臺라는 이름도 이런 전설에 따라 후세에 명명된 것이다. 다음은 고려 文宗의 넷째 왕자로서 우리나라 天台宗(천태종)의 宗祖인 大覺國師 義天(대각국사 의천)이 읊은 「孝臺」
. 적멸당 앞은 경색도 빼어나고 길상봉 위에는 한 점 티끌도 끊겼네. 온종일 서성이며 지난 일을 생각하니, 저문날 가을바람 효대를 감도네.
(寂滅堂前多勝景, 吉祥峰絶纖埃. 彷徨盡日思前事, 薄暮悲風起孝臺)
| | ▲ 사진 _國寶 35호 4獅子 3층석탑 | | | | 國史編纂委員會 史料調査委員 松石 河永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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